[국감] "이래서야 한수원을, 원자력을 믿겠나"

 

[이투뉴스] "이래서야 한수원을, 원자력을 믿겠습니까?", "정말 국민들께 송구스럽습니다."

한쪽은 쉴새없이 따져묻고, 다른 한쪽은 그때마다 연방 고개숙여 사죄했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가 별러온 한국수력원자력(사장 김균섭)에 대한 22일 국정감사 풍경이다.

이날 사선(射線)에 선 지경위 소속 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한수원을 겨냥해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단일표적이 된 한수원은 김균섭 사장의 침착한 대응에도 속수무책으로 폭탄세례를 받았다.

"정신이 나갔다", "굉장히 문제가 많은 곳" 등 비난 수위도 여느 때보다 높았다.

이날 지경위는 한수원이 사고은폐, 납품비리, 잦은 원전고장 등으로 대국민 불신을 자초했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김상훈 새누리당 의원은 감사원에 적발된 납품비리가 대체로 안전성과 관련된 부품이었음을 상기시키며 "이것이 2030년 전체 발전량의 59% 차지하게 될 기저발전 공기업의 현주소"라고 일갈했다.

이에 김균섭 사장이 "문제가 된 부품은 교체했다"고 답하자, "교체가 문제가 아니다. 사후약방문도 아니고. 그런 문제가 발생했다는 거 자체가 문제"라고 면박을 줬다.

같은 당 소속 전하진 의원도 "원자력이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예전처럼 사랑받을 수 있겠냐. 상당히 혁신적인 (쇄신)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우려를 내비쳤다.

원전 운영당국에 대한 불신을 성토하는 내용으로 시작된 국정감사는 이내 고리1호기 수명연장 적절성 논의로 옮겨갔다. 포문은 김제남 무소속 의원이 열었다.

김 의원에 따르면 한수원은 내년 4월부터 진행될 고리 1호기 계획예방정비를 통해 2000억원 규모의 설비교체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는 2007년 수명연장 당시 투입된 559억원보다 3.5배 규모다.

정비대상도 원자로 헤드, 제어봉구동장치 등 핵심부품이 포함돼 있다.

김제남 의원은 "앞으로 교체해야 할 것이 이렇게 많으면서 사후에 보완할 것이기 때문에 안정성이 확보됐다고 하는 것은 거짓 홍보 아니냐"면서 "일단 수명연장해 놓고 고쳐 쓰는 게 말이 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김균섭 사장은 "부품 교체는 애초 승인 당시 (규제당국의)요구사항이었고, 앞으로 몇년 더 돌리려면 (부품 교체가)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4년 쓰는데 2000억원 이상이 소요된다면 경제성으로도 아주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2017년에 추가로 수명연장해 더 쓸려는 꼼수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지경부 장관도 내년이면 신규발전소가 가동돼 전력수급 사정이 나아진다고 하는데 굉장히 불안한 고리 1호기는 내년까지만 가동하고 폐쇄하는게 국민 안전을 위한 길"이라고 역설했다.

고리 1호기 수명연장 승인 과정에 불법과 편법이 동원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조경태 민주통합당 의원은 2006년 고리 1호기 계속운전 승인 심사 시 원전 안정성을 확인할 감시시편이 부족하자 한수원은 용접해 재생한 시편을 편법으로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조 의원은 "전체 계속운전 원전 182호기 가운데 재생시편을 사용해 사례는 우리나라 고리1호기를 포함해 단 3곳 뿐"이라며 "계속운전을 예상치 않고 가동하다고 억지로 연장운영했다는 반증 아니겠냐"고 추궁했다.

그는 "우리나라 법 규정에도 재생시편을 사용해도 된다는 규정이 없다"면서 "불법적이고 편법적으로 계속운전되고 있어 안전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고리 1호기를 계속 돌려야 하냐"고 반문했다.

지경위의 압박질의에 김균섭 사장의 실언이 나오기도 했다.

김 사장은 박완주 민주통합당 의원이 한수원이 고리1호기의 재연장이나 재재연장을 위해 감시시편 등의 근거를 미리 준비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추궁하자 "재연장 또는 재재연장은 하지 않겠다"고 즉답했다.

그러나 원전의 수명연장 검토나 승인은 한수원 사장에 결정권이 없다.

이날 한수원 측은 "김 사장이 재연장 또는 재재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일부 보도가 나오자 "사장이 답변한 취지는 현재 2차 계속운전에 대해 결정된 사항이 없다는 의미일 뿐"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수명연장에 대한 적절성 공방은 급기야 원전 폐로(廢爐) 준비에 대한 논의로 이어졌다.

부좌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향후 폐로 원전 발생을 전제로 "실제 (원전) 해체 시는 충당금을 쓴다는 것이냐"고 질의했고, 김균섭 사장은 "폐로 충담금이 있고, 별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다.

그러자 부 의원은 "그럼 현재까지 폐로비용으로 얼마나 적립돼 있는가"라고 되물었고, 김 사장은 "약 5조원 정도"라고 답했다.

공공기관 경영선진화 계획에 따른 한수원의 무리한 정비인력 감축이 최근 잇따른 고장의 원인이라는 진단도 나왔다.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은 "원전 고장의 28%가 자연열화에 의한 것이고 나머지는 설계, 시공, 정비 등 인적요인에 의한 것"이라며 "2009년 경영선진화, 2010년 조직진단으로 한수원 현장인력이 13%나 줄었고 이 기간 원전 정지 건수가 비례해 증가했는데, 이는 대폭적인 인력감축에 따른 피로도 증가와 무관치 않다"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해마다 원전 계획예방정비 일수도 짧아져 1990년 평균 66일에서 2000년 평균 50일로, 2010년에는 평균 28일로 대폭 단축됐다"면서 "계획예방정비 공정을 재검토해 안전점검 공기를 추가로 반영하는 등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균섭 사장은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현장 인원 늘리는 건 정부와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